“봉선아! 엄마, 순옥이네 감자캐러간다. 솥에 밥 해놨으니까 동생들 깨워서 아침먹고 방청소하고 빨래하고 낮에 개밥주고 마당에 풀도 좀 뽑고, 어서일어나 ~ 개밥주는거 잊지말고, 나 간다.” “응 ~” “얼른일어나, 나 간다니까” “알았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해요. 언젠 뭐 내가 안했나~” 대답은 철썩같이 해놓고 난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어요. “봉선어멈 계시우? 집에있수?” “또 누구야!” 일요일이면 뭘해 도대체 잠을 잘수가 없는걸. “누구세요?” “응 나야 순덕엄마. 여태잤냐?” “안녕하세요. 엄마 안계신데요.” “어디가셨냐?” “순옥이네 집에 감자캐러 가셨는데요” “어이구 한발 늦었구나. 이 일을 어쩌나~ 일꾼이 모자라는데 오늘 다 못캐면 서리 맞힐지도 모르는데 큰일이네”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리면서 마당끝을 나서던 아주머니가“봉선아 근데 너 올해 몇살이지?” “중학교 3학년이예요. 열여섯살이요” “응 그래, 너 감자 캐본적있니?” “감자는 안캐봤어요 고추따본적은 있는데~” “너 오늘 감자한번 캐보지 않으련?” “하루종일이요?” “그럼~ 하루종일 캐야 품값을 주지” 엄마가 시키신일도 산더미고 교복도 빨아서 다려놔야 하는데 품값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순간 망설여졌어요. “하루 품삯이 얼마예요?” “응 삼천원. 모내는건 4천원이고 감자캐는거랑 김매는건 3천원씩이야. 너도 어른이랑 똑같이 3천원 줄게” 3천원이면 참고서가 두권이네. 국어참고서랑 수학참고서 사고싶었는데 잘됐다. 참고서 사서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뭐! “아줌마 저 감자캐러 갈께요.” 저는 난생처음 품팔이를 하러 호미를 들고 아줌마를 따라 나섰어요. 아직 이슬이 걷히질 않아 축축한 땅에 감자줄기가 이리저리 뒤엉키고 풀이 무성한 감자밭을 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이른아침 시골의 가을날씨는 춥기까지해서 이슬묻은 감자줄기를 걷어내고나니 손도 시리고 하기가 싫어졌지만 삼천원이 어른거려서 열심히 땅을 파헤쳤어요. 굵은 감자가 나오는게 재미있기도하고 어른들의 우스겟소리가 재밌기도해서 몇이랑은 앉지도 않고 허리를 반 구부린채로 열심히 캤는데 옆이랑에 앉은 정희엄마가 이렇게 감자를 찍어서 못쓰게 만들면 품값 안준다고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셨어요. 안찍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호미는 감자를 물고 나오는 거예요.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데 굼벵이는 또 왜그리 굴러나오던지요. 정희 엄마는 굼벵이를 약에 쓴다면서 그 징그러운 굼벵이들을 병에다 주워넣었어요. “나오면 주워서 나줘라!” 하시면서요.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하루해가 그렇게 긴줄은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해가 뉘엿뉘엿질무렵 돈 3천원을 받아들고 뛸 듯이 집엘갔는데 빨래며 설거지며 집안꼴이 엉망이라 두팔 걷어붙이고 나섰는데 그때 막 들어오신 엄마가 “너 왜 이제 교복을 빠냐? 지금빨아서 언제말라. 하루종일 뭐했어?” 엄마가 화내기전에 기쁘게 해드려야지 싶어서 짜잔 하고 3천원을 내밀면서 “엄마, 나 오늘 순덕이네 감자캤어. 어른들하고 똑같이 3천원 받았어. 엄마도 3천원 받았지?” “누가 너 보고 돈벌어오라고 그랬어.” 느닷없이 엄마는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드는 거예요. “이놈의 지지배 하라는 짓은 않하고 벌써부터 품팔이야.” 애써 돈벌고 부지깽이 찜질당하고 완죤히 개꿈 꾼 날이였어요. 팔다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셔댔지만 그래도 책갈피속에든 3천원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했어요. 다음날 막상 참고서를 사려니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들었어요. “아이스크림이나 한 번 배터지게 사먹어볼까, 떡볶기랑 핫도그를 실컷 사먹을까, 먹고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먹을게 아른거려서 공부도 안됐어요. 하지만 뼈빠지게 번돈인데 먹어치울수는 없지. 며칠더 있다가 중간고사 시험 볼때쯤 참고서 사야지. 하루에도 몇번씩 돈이 잘 계신가 책갈피를 열어보면서 며칠이 지난 어느날 어떤 낯선 아주머니가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아버지가 “에이~ 보험들면 죽는다는데...” 하면서 거절을 했어요. 아주머니는 악착같이 설명을 했고 망설이시던 아버지는 바지주머니를 뒤지면서 “보험료가 얼마라구유?” “2만7천원이요. 매달 2만7천원씩만 내면,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저씨가 돌아가시고나면 1억이 나와요. 아주머니랑 애들은 살아야할꺼 아녜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면”이란 말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죽기전에 1억 나오는거는 없수?” 하고 물으셨어요. “왜 없겠어요. 있지만 그거야 대신 돈을 많이씩 내야되죠. 몇십만원씩 내실 수 있겠어요?” “나 2만 4천원 밖에 없는데, 안되겠어요 다음에 들지뭐!” 하시면서 돈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시는데 제가 1억이란 엄청난 숫자에 귀가 번쩍뜨여서 아버지가 사망후란말은 뒷전이고 순간 1억이 탐나서 “아버지 나 3천원있는데...” 하면서 책갈피에 넣어둔 3천원을 얼른 꺼내서 아버지 앞에 내놓았어요. 보험아주머니는 반색을 하며 내돈 3천원을 나꿔채면서 “그래 그럼되겠다. 너 착하구나. 아유 예뻐라. 여기다 서명만 하시면 돼요. 자~ 여기...”하면서 아버지 앞에 들이밀었어요. 생명보험들면 빨리죽는다는데~ “아유~ 아저씨도 그런말이 어딨어오. 말도안돼. 그럼 뭐 우리보험회사들 다 굶어죽겠네. 자- 여기 볼펜이요. 빨리 거기다가 이름쓰세요.” 보험아줌마와 죽이맞은 딸년덕에 얼떨결에 서명을 해놓고는 영 찜찜한 얼굴이셨어요.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알리없는 저는 어쩌면 1억을 타서 우리가 팔자를 고칠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풀어서 첨고서 2권이며 아이스크림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실실 웃음만 나왔어요. 그로부터 3년후 찬서리가 내리던 어느 늦은 가을날. 땔감나무를 경운기에 잔뜩싣고 오시다가 몇길 낭떠러지를 경운기와 함께 굴러떨어지시고는 영영 일어나질 못하셨어요. 그해 아버지나이 48세... 아버지 대신 우리에겐 돈 1억이 생겼어요. 엄마는 돈의 위력앞에 슬픔을 삼키셨고 고3이던 저는 꿈도못꾸던 여대생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거예요. 점수도 되고 돈도 있건만 저는 대학을 포기했어요. “생명보험들면 빨리죽는다는데...” 하면서 찜찜해 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사라지질 않았어요. 철없이 내밀었던 내돈 3천원의 결과일까, 형체도없이 일그러졌던 아버지의 얼굴을 잊을수가 없었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돈 3천원만 아니였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지금쯤 백발이 되셨을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답니다. 팔다리가 쑤시는줄도 모르고 벌었돈 내돈 3천원의 자욱은 그렇게 피범벅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과 함께 내 가슴깊이 일그러진 모습그대로 구겨져서는 좀처럼 펴지질 않는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