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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똥고집(MBC Radio 9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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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52회 작성일 2007-01-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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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똥고집

  MBC Radio 싱글벙글쇼 신혼일기(1999. 5. 29)

오전에는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오후에는 부대수영장에서 군인자녀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군간부들의 컴맹탈출을 위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그렇게 육.해.공에서 젊음을 불사르던 특전사(공수부대) 중위시절이었습니다.
유난히도 지독한 컴맹이어서 내 따가운 눈총을 받던 여군 중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으슥한 저녁 야간수업을 거의 끝마칠쯤 휴식시간에 제게 커피한잔을 내 놓으며 “저, 교관님 애인있으세요?” 컴맹답지않게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 애인이요!” (듣기만해도 가슴설렌다.)
“아직없습니다.”
“잘됐네요 제 후배가 한명 있는데 예쁘고 착해요. 
직업은 간호사이고 나이는 스물넷이예요...”
중매쟁이 말이 반은 뻥인줄 알지만 믿져야 본전이라...
“근데 저녁에 시간이 될려나!” 한 번 튕겨보고는 그럼관둬요 소리가 나올까봐 얼른 “바빠도 시간을 한 번 내보죠!” 흔들거리는 버스속에서 약속시간은 지나가고 얼마나 진땀을 뺏던지죠.
약속시간보다 50분이 지나고있을무렵 약속한 약속이란 레스토랑에 도착했습니다.
어머! 언니 나 지금 막 가려고 하던 참이야 하면서 의자에 살포시 다시앉는 여자살은 적당히올라서 오동통통하고 피부는 하얗고 앞태를 봐도 뒤태를 봐도 순진한 시골소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남자처럼 씩씩한 여군들만 보아온 난 그만 두눈이 헷가닥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렇게 얌전하고 순진한 여자랑 한 평생살면 왕 대접은 못받아도 편히는 살겠구나 싶어 결심했죠. 이 여자랑 살기로...
악으로 깡으로 작정을 하고 밀어붙이자 어쩔수 없었던지 수줍어서 얼굴도 못들고 땅만보고 얘기하는 그 여자는 그래도 만나자고 하면 꼬박꼬박 약속시간에 맞춰 잘도 나오데요.
성질급한 저는 밀어붙이기 한판으로 군 생활중에 결혼도 했고 애기도 만들었습니다. 부대에서 고된훈련을 끝냈을 때 지휘관인 단장님(대령)의 명령으로 부부동반 회식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날저녁 우린 가뭄 끝에 물만난 고기처럼 술을 마셔댔고 군인들 특유의 몸짓으로 춤을추며 놀았습니다. 
1차 파장과 함께 높은분들은 빠지고 우리 젊고 밑에사람들만 2차의 신나는 행진을 했고 아직 미혼인 동기생의 애인들과 부르스도 추고 아무튼 그렇게 신이난 나는 앞 뒤 못가리고 망둥이처럼 뛰고 노는 동안 배부른 얌전한 아내가 날 쏘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택시를 타고오는동안 아내는 한마디도 하지않았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묵비권 행사라...
“좋다 이거야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 낙하산 타다가 죽을뻔한 것도모르고...”
난 그렇게 술기운에 중얼거리다가 잠이든 것 같습니다.
꿈속을 헤매다가 무언가에 짓눌려서 깜짝놀라 깨서 시계를 보니 아직은 이른시간 새벽 5시였습니다. 이 시간에 내가 왜 잠이 깼을까?
다시 누워서 이불을 끌어당기다가 난 그이유를 알았습니다.
방구석에서 아직도 나를 쏘아보고있는 아내의 두눈.
그 눈의 독기 때문에 내가 나도 모르게 잠이깬것이었습니다.
아~ 술이 확 깨데요.
결혼전 그 순진하고 맑던 아내의 두눈이 그렇게 찢어져 올라간 줄은 난 미쳐 몰랐습니다.
“왜- 내가 술먹고 실수한거 있어? 미안해 미안하다니까 우리 자자”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그래 손 안대 그러니까 그냥 자자구 자아~”
그러고는 더 이상 말을 안하고 또 묵비권 행사와 함께 독기를 뿜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저 순진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독기를 뿜어낼수 있을까?
콩깍지가 벗겨지는 비참한 순간이었습니다.
독기에 잠이깨고 독기가 무서워서 새벽잠을 청하고.....
그날저녁 가슴조이며 퇴근을 했는데 저녁밥도 하지않은 아내는 짐 보따리를 챙기고 있는 겁니다.
“에이 열받아! 내가 뭘 잘못했어! 술먹고 춤추고 동기생 애인하고 부르스 한 번춘게 그렇게 잘못한거야 그럴수도 있지 그래 죽을죄를 졌다 졌어.”
그놈의 성질 때문에 난 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군납양주를 꺼내들었습니다.
술기운을 빌어서 어떻게 아양을 떨어볼양으로 술을 마신건데 아내는 그런 내 모습에 더 화가난 모양이었습니다.
“나도 한잔줘!”
컵이 깨지도록 방바닥을 치면서 다가 앉는 겁니다.
“어 그래 임신한 여자가 뭐 술을먹겠다고...  그래 어디 한 번 먹어봐라”
한컵 가득 독한 양주를 따라주고 나는 병째 마셨습니다.
(달래면서 컵을 치워야 하는건데 순간 나는 후회하면서도 행동은 자꾸만 엇나가고 나의 터프함은 또 낙하산을 타고 맙니다.)
“어떻게 이럴수가있어 내가속았어 임신한 날 보고 술을 먹으라고... 
그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야 아빠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구!”
“달라며- 술을 달라고 한사람이 누군데, 그래 임산부가 술달라고 한건 잘한 일이야. 그건 엄마될 자격이 있는거구?”
“그래 우린 어차피 엄마.아빠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야. 차라리 세상에 안태어나는게 좋아” 아내는 엉엉울면서 산모수첩을 챙겨들고는 길건너에있는 산부인과로 가는 겁니다.
뜻밖인 아내의 행동에 술이 확 깬 나는 어쩔줄몰라 그냥 문을 열어 놓은채로 아내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저여자가 정말로 저 신호등 을 건너면 어쩌지”   가슴조이는 나와는 상관없이 아내는 산부인과 문을 당당하게 밀고 들어가는 것이였습니다.
“속은 사람은 나야. 그때 알아봤어야 되는건데- 처음 소개팅 하던날 50분씩이나 날 기다린건 착한게 아니고 저 똥고집 때문이었어” 
누구도 꺽을수 없는 똥고집.
순진하고 얌전한 여자의 똥고집은 정말 무서운거구나.
새하얗게 천사의 얼굴을 하고 어떻게 산부인과문을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만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린 이제 끝이야. 독한 여자 만나서 내인생 끝장난거야. 결혼전에는 그렇게도 얌전하더니 내가 미쳤지 미쳤어. 저런여자를 천사라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지났을까
거실 바닦에 엎드려 후회하고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나 지금 병원인데 걸을수가 없거든, 의사선생님이 그러는데 보호자가와서 데리고 가래”
이게 무슨 개 풀뜯어먹는 소리야. 하는데 돈 떨어지는 소리가 삐리릭 삐리릭 나는 겁니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달려가보니 병원 앞 공중전화 BOX안에서 불룩나온 배를 움켜쥐고 앉아 울고있더군요. 
“우리 싸우지말고 잘 살자. 미안해”
“어쩜 문을밀고 들어가는데도 잡지를 않냐. 너무해”
“그러게 왜 똥고집을 피우고 그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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